그리스 신화에 보면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노상강도의 원조 격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인물은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서 돈을 모두 빼앗은 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자신의
침대에 눕힌다. 그는 황당하게도 행인이 그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망치로 무두질을 해서 침대 사이즈에 맞을 때까지 키를 늘려댔고,
키가 크다면 칼로 냉큼 잘라내어 역시나 침대 사이즈에 맞추었다.
이 사이코 강도의 행동으로부터 나온 말이 바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어떤 모델이나 사상적 기준을 설정해 놓고
강제로 그에 맞추려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현대 사회에서는 사라져야 할
과거의 유물이다. 그 어느 누구도 타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그것이 모든 자유의 본질이자 핵심인 양심과 사상의 자유라면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의 현존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라는 말이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 정적 제거를 위해 탄생한, 그리고 김병로 대법원장이
한시적 특별법이니 폐지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그리고 53년 제정된 형법을
통해 국가안보와 관련된 여러 범죄들이 규율되면서 존재의의를 상실한)
이 법이 반공, 국가안보 등의 기치를 높이 들고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신의 자유를 옥죄고 있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 서서 싸우겠다" (
관용론, 볼테르)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 자유를 내건
국가에서 말이다.
그런고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조문을 정말 무안하게
만드는 국가보안법은 이제는 안녕을 고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야만의 시대' 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