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심적 병역거부, 그게 뭐야?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or)란,
개인의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서 양심이란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질 것이라는 진지한 믿음의 소리" 를 의미한다.
(헌법재판소가 정의한 것에 따른다면)
이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양심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것으로
정확히 말하면 신념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일부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지 않으면
비양심적(?)인 것이 되느냐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외국의 용어를 그대로 직역한데서 빚어진 오해일 뿐이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인 이유에 한정되지 않는다.
윤리적, 인도주의적인 이유에 의한 병역거부도 여기에 포함된다.
흔히들 여호와의 증인이란 종교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에 한정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2. 양심의 자유? 신념의 자유? 어쨌든 군대 빠질려고 그러는거 아닌가?
군복무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다만 대인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총을 잡지는 못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이고, 그래서 그들은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향한다.
이들은 항명죄(형량이 3년 이하의 징역이다)로 처벌을 받게 되고,
1년6월의 형을 살고 나온다. (이것도 최근의 일이고, 이전에는 3년
채우고 나왔다)
사회에 복귀하게 되면 이들에게는 딱지가 하나 붙는다. '전과자'
것두 병역기피 내지는 병역거부로 인한 항명죄라는 딱지..
다들 알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런 딱지 붙으면 편안한 인생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들이 뭐 돈 많거나 권력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랬으면 뭐하러 이런 골아픈 짓을 하겠는가.
돈으로 빽으로 돌리면 되는게 대한민국 사회다.
이들은 대부분 힘없는 서민이다.
따라서 공무원, 일반 직장 취직은 불가능이다. 할건 사업밖에 없고
딱지 하나 제대로 붙었으니 대출 같은 것도 될리가 없다. 난 사실
이들이 이제껏 어떻게 살았는지 정말 궁금하다. 주홍글씨 달고
세상사는 게 정말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감방에서 18개월을 지내고, 사회에 나오면 뚜렷한 희망도 보이질
않고..당신이라면 정말 군대 가기 싫어서 이렇게 하겠는가?
내가 보기엔 군대 2년 갔다 오는 게 훨 나아보인다.
이런 선택을 하기 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고뇌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걸 너무 가벼운 잣대로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야 남의 일이니까 가볍게 얘기할 수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피가 마르는 필생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3. 그렇다고 쳐도 얘네들은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자들 아닌가?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특혜를 줄 수는 없잖은가?
이제부터 슬슬 첨예한 대립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참고로 이들은 아예 병역의무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단지 총을 잡지는 못하겠다는 것이고, 그래서 다른 식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대체복무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사회적 소수자에게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냐, 아니면
특혜를 주는 것이냐다.
이게 특혜라면 대체복무를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권리는 누리고
의무는 이행하지 못하겠다는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반대편의 입장은 의무를 이행하되, 다만 예외를 허용해달라는
것이니 양심의 자유를 보장할 의무를 지는 국가가 그 길을 터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가? 어느 쪽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가?
4. 그들은 자신들의 양심(신념)을 존중해달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모든 신념이 옳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들의 신념은 현 체제를 부정하는 것일 수 있다.
그것도 인정해줘야 하는가?
이건 '양심의 자유'의 한계와 관련된 부분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19조에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와 있는 내용은 달랑 이거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많은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나오는 얘기는 혼자서 생각하는 거야 뭘 생각하든
자유롭게 인정해주되, 그게 행동으로 옮겨질 경우 제재를 가하자는
것이다. 이건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근데 헌법재판소에서 98년 즈음에 이런 판례를 냈다.
"헌법 제19조가 보호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는 양심형성의 자유와
양심적 결정의 자유를 포함하는 내심적 자유(forum internum)뿐만 아니라,
양심적 결정을 외부로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양심실현의 자유 (forum externum)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허걱, 그럼 내가 살인하는 것도 내 양심실현의 자유에 따라 인정되는거야?
라고 질문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정답은 '아니요' 가 되겠다.
이와 관련된 외국 판례 중에서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것" 이라고 판시한 것이 있다. 즉 그 신념 자체가 -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상당히 보편적이어야 한다 - 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정당방위'를 예로 들어보자.
정당방위는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키는 행위지만, 예외적으로
부당하게 자신(타인도 포함)의 이익이 침해될 위기에 처했을 때
그 범죄행위가 인정된다는 이른바 '위법성 조각사유'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분명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정당방위 상황에서 설령 사람이 죽더라도 하마터면 피해자가
될 뻔했던 행위자에게 도덕적 비난을 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는 '내가 얘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 라는 신념이
본성에 근거한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다.
진짜진짜 길게 얘기했는데 결론만 간단히 말하자면 총을 잡을 수 없다는
양심은 보호될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상당한 보편성의
문제에서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상황은 특수하니 인정해줄 수
없는 것이 아니냐..라는 질문에는 그것도 타당성이 있다..라고
말하겠다.
결국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똘레랑스를 許할 수는 없는가..
로 돌아가는 것이다.
5. 대체복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 판결로 인해 드디어 마른 짚에 불이 붙었다.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언론의 냉담함 속에
조용히 수형생활을 해야 했다. 동의 여부를 떠나서
진작에 공론화가 되었어야 할 사안이다.
한가지 바라는 건 좀더 성숙한 논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들은 자기 인생을 걸고 하는 것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좀더 진지한 자세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