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영훈 교수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2차대전 당시 나치가
했던 것처럼 일본이 직접 강제 동원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어서
많은 한국인들이 가담했다는 사실관계를 통해 친일진상규명의 복잡한
문제를 단순히 인적청산 중심으로 논의하고 그것으로 매듭을 지으려는 것에 대한
우려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영훈 교수의 발언은 소위 '꼬인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 역시 친일진상규명에 찬성하지만, 단지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이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론에서는 친일진상규명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됨으로써 자신의 진의와는 다른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경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자기성찰, 반성 등의 표현은 이런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을듯 하다.)
이러한 견해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공창제도와 (물론 이번달 부터 -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 시행되는 성매매방지법은 기존 법률과 마찬가지로
성매매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종군위안부 동원이
궁극적으로 인권탄압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인식으로 진전된다.
이 견해는 어느 정도 선에서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후자가 더 악랄한
인권침해행위라고 생각하지만 해방 후 미군 상대로,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가의 묵인 아래 행해지는 한국 성매매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그 죄질에 있어서 만큼은 논의의 여지가 있을지 몰라도 인권유린이라는
차원에서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좀 더 부연하자면, 이른바 매춘행위는 분명히 성매매여성들의 성(정확히 말하면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본에 팔아 넘겨서 그들이 인간이 아닌 물건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분명한 인권유린이며, 현행법제 하에서 인정되지 않는
위법행위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체적 구속과 경제적 유인' 이라는 차이는 존재할 지 몰라도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수반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범주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견해는 쉽게 용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매춘의 자발성을 일정부분(전적으로 긍정하는 견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긍정하는 입장도 분명히 존재하며, 한국 성인 남성의
다수는 이러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기에 강제적으로 성적 착취를
자행한 일제의 만행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 견해는 어떤 측면에서는 일본의 행위를 긍정할 여지를 남겨두는
물타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편인권 차원에서 접근할 경우
친일진상규명은 일제잔재의 청산이 아니라 일제의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동시에 그 시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인적 청산은 겉으로 드러난 가지를 쳐낼 수는 있어도 그 뿌리까지
제거할 수 없는 일종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제에 부역했느냐
아니냐라는 1차원적인 관점을 넘어서 인권에 대한 침해라는 문제를 놓고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민족주의적 관점이 아닌 보편인권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한 이 교수와의
관점의 차이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명백한 선악의 차원에서
(이 교수가 말한 것처럼)
재단되면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친일진상규명이라는 문제가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디테일한 문제까지 모두 다루면서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반성과 성찰이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역사적
진실에 대한 접근을 통해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근대성의 잔재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by 크로와상 | 2004/09/07 23:37 |
critique |
트랙백 |
덧글(0)